하버드대학교 건축·미술사학과 교수 김진아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94학번인 김진아 교수는 UC버클리에서 미술사 석박사를 취득, 2012년 조교수로 하버드대학교에 부임 후 지난 7월 1일 자로 종신교수직에 임용됐다. 인도의 후기 불교 미술을 주제로 텍스트와 이미지를 통합적으로 해석하는 독창적인 연구, 안료에 대한 역사ㆍ문화ㆍ보존과학적 지식을 연결시키는 안료사 프로젝트 등을 선보이고 있다.
인도를 비롯해서 네팔, 방글라데시, 미얀마 등 세계를 바쁘게 오가는 김진아 교수가 방학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모교를 찾았다. 1999년도에 유학을 떠난 후 20년 만의 방문이다.
고고미술사학도, 인도 불교 미술에 흥미를 느끼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외할머니를 따라 어릴 때부터 불교 미술을 익숙하게 접했다.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에 진학 후에는 이주형 교수의 인도미술사 수업을 들었다. 국내 사찰과 인도 · 파키스탄의 유적지, 박물관으로 답사를 떠나면서 재미를 느끼고, 흥미는 본격적인 관심이 됐다.
“얼굴이 까만 편이라서 농담처럼 인도 가면 적응 잘할 거라는 말도 들었는데 실제로 사람들이 저를 참 반가워하고, 어느 지역에서는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은 포근함 같은 느낌도 받았죠.”
낯선 나라에는 타국에서 온 연구자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이 많았다. 콜카타(Kolkata)에서 1년 동안 연구년을 보내면서 타고르의 조카가 운영하는 아파트에서 머물기도 했고, 그렇게 맺어진 관계는 여전히 소중한 인연이다.
그가 연구하는 8세기~13세기경 후기 불교의 경전과 세밀화 자료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다.
“인도가 불교의 발상지였지만 종교가 쇠퇴하고, 영국 점령을 받으면서 자료가 주변국으로 많이 흩어졌어요.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면서 보는 일 자체는 조금 어렵지만 사실 저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그림 보는 일, 문자 읽는 일. 제가 흥미 있어 하고 좋아하는 분야에서 지금껏 지적인 호기심을 계속 좇으면서 살고 있는 거거든요.”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독창적인 연구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히는 산스크리트. 김진아 교수는 그중에서도 산스크리트 고문서(Palaeography)를 읽는다. 워낙 오래되고 난해한 서체로 쓰여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없지만 그는 자력으로 터득했다.
“불교학자들이 만들어놓은 판본이 있어요. 인쇄한 판본하고 고서본하고 직접 차트 만들어 비교하면서 글자 모양을 해독했죠. 옛날 명문 같은 것을 혼자 계속 베껴 쓰는 게 취미예요. 야자 잎 위에 쓰여진 천 년 된 경전, 고서들을 보면 뭔가 빛이 나는 것 같아요. 이런 걸 어떻게 하나하나 썼을까 너무 궁금해요.”
특히 그의 연구는 기존 학계에서 증명할 수 없었던 부분에 새로운 가설을 세워 관련성을 증명하면서 학계의 지평을 넓히는 것이다. “통설은 산스크리트어 경전에 적힌 텍스트와 이미지는 서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건데요. 사실 책을 평면이 아니라 3차원으로 확장해서 보면 명확한 인과관계가 있거든요. 열심히 사례를 모아서 증명하고, 설득하는 일을 하고 있죠.”
최근 착수한 ‘안료사 프로젝트’ 역시 세상에 없던 분야다.
“‘인도 미술 작품에서는 왜 이렇게 화려한 색을 쓸까?’ 스스로 질문하고 역사적, 거시적인 연구 결과를 연결시켜서 보는 거죠. 회화사를 연구하다 보니까 안료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보존과학적인 지식이 궁금하더라고요. 과학적인 분석과 미술사학적 관점을 연결하면 패턴이 보여요. 시대별로, 장소별로 데이터를 모아서 색채들이 어떻게 분포되어있는지 보는 맵을 만들고 있어요.”
8년째 하버드대학교 강단에서 가르친다는 것
그는 올해 까다롭기로 유명한 심사 과정을 거쳐 하버드대학교의 정교수가 됐다. 앞으로 3~40년 이상 해당 분야의 연구를 선도적으로 이끌어갈 연구자에게 수여되는 영예다. 한국사를 제외하면 인문학을 가르치는 유일한 한국인 정교수다.
“하버드대학교의 학생들은 정말 뛰어나요.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종교사, 화학, 과학사 등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제 수업을 듣는데 그들에게 받은 질문과 생각이 저의 연구에 인사이트를 주기도 하죠.”
김진아 교수의 남은 한 해 스케줄은 빡빡하다. 2015년부터 준비한 네팔 불교미술 전시가 9월 5일 드디어 막을 연다. 하버드대학교 아시아센터에서 12월에 열리게 될 네팔 관련 심포지엄을 준비하고, 하버드 남아시아 연구소의 예술 분야 디렉터로서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지역의 보존과학 연구를 키우기 위한 밑 작업을 한다. 아직 초창기 단계인 안료사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진행함과 동시에 인도에 도입된 ‘종이(paper)’에 관한 연구도 계획 중이다.
스스로의 지적인 호기심을 정확하게 바라보고, 꾸준히 흥미를 정교화하면서 살아온 그의 삶은 연구자로서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가족의 든든한 응원과 사랑을 뒤에 업고 그는 미국과 남아시아, 한국에 또렷한 발자국을 새기며 한발씩 새로운 길을 개척해 간다. 앞으로 모교인 서울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사이 관계가 진척되면 양교의 협력을 증진하는 데도 좋은 연결 고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가 만들어갈 새로운 길의 모습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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