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서울특별대학' SNU의 존재 가치는 무엇일까? 시대적 가치를 대표하는 5인의 동문들에게 자신에게 서울대는 무엇이었는지 물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60-70년대는 우리나라가 여공들 혹사시켜 가발 같은 거 만들어 연명할 때였어요. 우리 서울공대생들은 공부하는 목표가 아주 뚜렷했어요. 열심히 배워서 제대로 된 산업을 일으켜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겠다는 거. 내가 유학에서 돌아왔을 때 국산 자동차라고 하는 게 다 일본 부품 사다가 조립만 한 껍데기였는데 결국 우리 기술로 엔진을 개발해서 일본에 수출했지요.”
- 이현순 (기계공학과 69학번), 최초로 국산 엔진 개발
“저는 서울대에 있을 때 특별히 우수한 학생은 아니었어요. 여기까지 온 것도 운이 좋아서죠. 세상에 머리 좋은 사람은 참 많아요. 그런 세상에서 자기만의 연구를 하려면 결국 중요한 건 내적인 자신감이에요. 비슷한 사람들하고 토론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무너질 수 없는 자신감을 쌓을 수 있습니다. 서울대에서 그걸 할 수 있었던 게 정말 행운이었어요.”
- 김필립 (물리학과 86학번), 세계 최초로 '그래핀' 개발
“박종철 형이 언어학과 선배였어요. 그가 아니었으면 우리나라가 이렇게 민주화를 이루지 못했을 거에요. 그 때 우린 다 박종철이었어요. 말 한 마디 때문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던 엄한 시절인데도 우리는 계속 싸웠어요. 굳이 세어 본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쳤던 학생들은 절대 다수가 서울대였어요.”
- 이현주 (언어학과 86학번), 박종철과 함께 학생운동 참여
“저는 남극에서 지구 온난화에 따라 빙하가 얼마나 녹고 있는지 연구하고 있습니다. 남극에 한 번 들어오면 몇 달씩 머무르면서 극한 상황에서 연구를 수행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할 때도 많아요. 전세계에서 많은 과학자들이 와 있지만, 서울대 사람들이 탁월한 리더십과 연구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 이원상 (지구환경과학부 93학번), 남극에서 연구활동
“초등학교 때부터 축구선수 생활을 하다가 고등학교 때 서울대에 가겠다고 하니까 다들 절대 못간다고 놀렸어요. 고3때 하루 3번 훈련하고 월수금 밤엔 야간 훈련, 화목엔 야자를 하며 버텼어요. 프로선수가 되고 나서는 공부만큼 열심히 훈련을 했어요. 죽도 밥도 안될 순 없으니까요. 서울대에 들어간 덕분에 제가 이렇게 프로 무대를 밟을 수 있었네요.”
- 이정원 (체육교육과 13학번), 프로 축구선수 데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