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치료, 해양생물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홍합과 같은 해양 고착생물은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닷물에서도 바위에 강하게 붙을 수 있다. 세계 많은 과학자들이 해양생물을 모방한 접착제 개발에 힘써왔으며, 다양한 성과들을 얻어냈으나 임상 응용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서울대-캘리포니아대 국제공동연구팀이 해양생물의 접착력을 실제 치료에 응용할 수 있는 나노 접착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하였다.
해결의 실마리는 치과치료에서 나왔다. 치과의사는 타액이 많고 악조건인 구강에서 치아에 수복재료를 붙이기 위하여 산(酸)을 이용하여 치아표면을 준비하고 접착제가 잘 붙는 표면으로 바꾸기 위해 프라이머라는 표면처리를 한 후에 접착제를 붙인다. 홍합은 족사를 바위에 붙이기 위해 접촉면을 산성상태로 만들어 표면을 준비하고 산화되기 쉬운 접착물질인 카테콜의 산화를 방지한다. 특히 연구진은 카테콜(미네랄 표면에 두 치아가 물리는 형태로, 동시에 두 개의 강력한 수소결합을 가능케 하는 페놀성 화학작용기) 함량이 홍합족사의 접착 표면에 집중된 것에 주목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서울대 치의학대학원 안진수 교수팀은 해양생물 연구로 유명한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바바라캠퍼스(UC Santa Barbara) 연구팀과 함께 생물 접착 메커니즘을 모사하여 치과치료에 이용할 수 있는 카테콜 프라이머를 개발하였으며, 이 프라이머가 1 나노미터(백만분의 일 센티미터) 두께로 표면에 흡착되는 특성을 발견하였다.
이 프라이머를 이용하면 현재 치과용으로 상용되고 있는 접착제들의 성능을 열 배 이상, 치과 수복재의 내구성을 50% 이상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연구를 통해 또한 밝혀졌다. 더욱이 독성시험 결과, 무독성으로 밝혀져서 생체용으로도 문제없이 사용이 가능할 것으로 연구진은 기대하고 있다.
융합연구를 통해 이루어낸 성과
이 연구가 시작된 계기는 치과의사이자 치과생체재료 연구자인 치의학대학원 안진수교수가 해양생물학 연구로 세계 최고수준으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산타바바라캠퍼스에 방문교수로 가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카테콜의 화학적 특성이 사람의 치아에 활용하기에 적절한 것을 발견하자마자 분자합성 전문가 및 화학시뮬레이션 연구자들과 함께 기존의 치과용 접착 프라이머의 형태를 본 따서 새로운 프라이머 개발에 박차를 가하였으며,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실제로 기능을 하는 단순화된 분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하였다. 연구기간도 늘어나면서 안진수 교수는 1년의 연구년에 연수휴직 1년을 더해가며 연구를 계속 이어나가는 노력을 기울였다.
치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연구 인프라를 갖춘 우리 대학교 치학연구소의 도움으로 각종 실험재료와 박사급 연구자는 물론 장비까지 미국으로 공수해가며 다양한 실험을 진행한 결과, 충치치료에 사용되는 콤포지트 레진과 같이 단단한 고분자 재료에서도 프라이머를 적용함으로써 에너지소산효과를 관찰해내는 데에 성공하였다.
안진수 교수는 “이 나노접착/프라이머는 사람의 치아, 뼈 등의 경조직 및 임플란트 표면에도 잘 붙고 독성이 없으면서도 강력하고 터프한 특성이 있어서 생체표면처리제는 물론 깨지기 쉬운 현재의 치과용 수복재 등 다양한 치과재료에 사용될 경우 현대인의 치아건강을 더 오래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하였다. 교신저자인 캘리포니아대 콜베 안(Kollbe Ahn) 교수 역시 “수많은 두 자리 수소결합들이 충격에너지를 소산(消散)시키는 분자구조를 세계최초로 무게를 지탱해야 하는 구조용 물질(치과용 수복재)에 응용하는 데 성공한 이 연구는, 기존에 주로 사용되어 왔던 에너지 소산능력이 없는 공유결합에 의존한 실란 표면처리를 대체할 경우, 치/의과용 및 반도체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의 활용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주요 실험은 캘리포니아 대학에 근무하던 한국인 박사후 연구원들이 담당했는데, 그 중 공동 주저자인 서성백박사와 이동욱박사는 각각 부산대 바이오신소재과학과와 울산과기대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에 교수로 임용되어 앞으로도 큰 발전이 기대되고 있다.
본 연구결과는 재료과학 및 신소재분야 세계 최고권위저널 중 하나인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 (Advanced Materials. IF: 19.79)에 게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