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분화와 사멸, 암 발생 과정에서 다양하고도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 RNA. 이는 21~23개 염기로 구성된 아주 작은 RNA다. DNA에서 RNA로 전사된 뒤 여러 단계를 걸쳐 완성되는 마이크로 RNA는 단백질로 변하지 않고 RNA 상태 그대로 세포 내에 존재한다. 마이크로 RNA는 다른 유전자를 조절하는 역할을 하며 인간 세포에 2000개가량 존재한다.
이 마이크로 RNA가 특정 단백질에 의해 형성되는 과정이 인체 세포 내에서 처음 확인됐다.
기초과학연구원 RNA연구단 소속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은 최근 이 마이크로 RNA가 '드로셔'라는 단백질에 의해 형성되는 과정을 규명했다. 연구팀은 드로셔 단백질이 마이크로 RNA를 자르는 위치를 대량으로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실험법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그간 알려져 있던 마이크로 RNA 정보가 일부 부정확했음을 밝히고 드로셔와 마이크로 RNA 각각의 새로운 특성도 연구했다.
드로셔 단백질은 마이크로 RNA 1차 전구체를 특정 위치에서 자르는 효소 역할을 한다. 전구체는 물질 대사나 화학 반응에서 최종 물질이 되기 전 단계 물질을 말한다. 보통 DNA에서 전사된 상태를 1차 전구체라고 하고 드로셔와 다른 단백질 복합체가 가공해 만든 산물이 2차 전구체다. 1차 전구체와 2차 전구체 과정을 거친 후 완전한 마이크로 RNA가 된다.
드로셔 단백질은 2003년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에 의해 마이크로 RNA 생성에 필수적인 효소로 밝혀진 바 있다. 지난해 연구팀은 드로셔 단백질의 3차원 구조 규명에 주안점을 두고 드로셔가 마이크로 RNA 1차 전구체의 어느 부위를 인식해 절단하는지 그 패턴을 일반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드로셔 구조와 일반적인 RNA 절단 패턴은 밝혀졌지만 실제 인체 세포 안에서 드로셔에 의해 만들어지는 마이크로 RNA 각각에 대한 정보는 부족했다. 또 드로셔가 마이크로 RNA 생성을 주도하는 역할 외에 어떤 기능이 있는지도 불명확했다. 여기에는 실험법적 한계가 있다. 자외선을 이용해 RNA 결합 단백질에 붙은 표적 RNA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이른바 '클립시크' 실험법은 드로셔 단백질에는 잘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진은 자외선 대신 포름알데히드를 이용하는 방식인 'f-클립시크'로 실험법을 대체했다. 포름알데히드는 RNA와 드로셔 결합 부위에 끼어 들어가 둘을 이어준다. 이 상태에서 드로셔에 특이적으로 결합하는 항체를 처리하면 항원·항체 반응으로 드로셔만 모아 드로셔에 붙어 있는 RNA 산물을 염기서열 분석법으로 읽어낼 수 있다. 연구팀은 사람의 배아 신장 세포와 자궁경부암 세포 두 종류를 대상으로 f-클립시크를 적용해 수백 개에 달하는 마이크로 RNA 전구체상 드로셔 절단 위치를 찾는 데 성공했다. 드로셔의 절단 부위를 단일 염기 수준으로 확인한 것이다.
마이크로 RNA 전구체상에서 드로셔의 절단 부위는 마이크로 RNA 생성 과정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정보임에도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그간 극소수 일부 마이크로 RNA에 대해서만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연구팀이 개발한 f-클립시크는 단 한번의 실험만으로 수백 개에 달하는 마이크로 RNA 전구체에 대해 단일 염기 수준으로 정확하게 볼 수 있도록 해준다.
김빛내리 단장
연구팀은 이 같은 실험에서 얻은 마이크로 RNA 데이터를 세계 최대 마이크로 RNA 데이터베이스인 '미르베이스'와 비교했다. 미르베이스는 세계적 권위를 지닌 영국 마이크로 RNA 데이터베이스로 현재까지 세계 최대 마이크로 RNA 데이터를 지니고 공개하고 있다.
비교 결과 드로셔가 만드는 마이크로 RNA 중 상당수가 불일치함을 확인했다. 미르베이스는 생성이 완료된 마이크로 RNA만 기준으로 삼는데 많은 마이크로 RNA가 생성되는 도중 염기서열 끝부분에서 추가적인 변형이 일어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또 동일한 마이크로 RNA 전구체라도 드로셔에 의해 각각 다른 부위가 절단돼 여러 종류의 마이크로 RNA 이성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데 극소수 마이크로 RNA에서만 이러한 현상이 보고됐던 것과 달리 이번 연구를 통해 실제로는 다수의 마이크로 RNA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연구진은 드로셔가 마이크로 RNA 전구체 외에 수십 종의 다른 RNA 종류도 자르는 것을 확인했다. 드로셔는 RNA를 잘라 신경 발생이나 골수 형성 과정을 조절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증식을 억제하는 기능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크로 RNA 외에도 드로셔에 의해 기능이 조절되는 RNA들을 새롭게 찾아냄으로써 드로셔 역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확장한 것이다.
드로셔는 배아줄기세포나 뇌 조직에서 유독 발현되는 양이 높기 때문에 마이크로 RNA 생성뿐 아니라 다른 표적 RNA의 절단을 관찰하면 중요한 기능이 더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f-클립시크 방법을 적용해 드로셔가 배아 발생이나 뇌 발달과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규명하는 게 필요하다. 김빛내리 단장은 "이번 연구는 드로셔가 결합하는 RNA를 정확히 찾아낼 수 있는 연구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여러 현상들에서 드로셔 기능을 규명할 길을 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 대상 외 다른 인체 세포에서도 드로셔에 의해 만들어지는 마이크로 RNA 정보를 밝혀나갈 계획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셀'의 자매지인 '몰레큘러 셀'에 최근 게재됐다.